본문 바로가기
2008.01.27 15:33

개차산과 죽산

조회 수 8835 추천 수 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개차산과 죽산

경기도 안성 이죽면의 옛이름은 ‘개산’ 또는 ‘개차산’이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개산군은 본래 고구려 개차산군이었는데 경덕왕 때 이름을 바꾸었으며, 고려 때는 죽산(竹山)이라고 불렀다. 흥미로운 사실은 죽산의 옛이름으로 ‘개차’라는 말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개차’라는 말은 본래 ‘임금’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는 행주(幸州)의 옛이름인 ‘개백’에서도 확인된다. 행주는 본디 고구려 개백현(皆伯縣)이었는데 우왕현(遇王縣)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행주로 바뀐 땅이름이다. 이 ‘개백’은 한자 ‘왕’(王)과 대응되며, ‘개차’(옛음은 ‘가이지’)는 ‘대’[죽]와 대응된다. 땅이름 표기는 토박이말 단어의 첫음절을 한자음으로 쓰거나 그 말에 해당하는 한자를 찾아 맞옮긴다. 이런 원리에 따라 ‘개백’을 ‘왕’으로 옮겼고, ‘개차’는 ‘대’로 옮긴 셈이다. 한자 ‘대’는 큰 것뿐만 아니라 왕과도 관련이 있다.

중국 역사서인 <주서> 이역전 백제조에는 “왕의 성은 부여씨로 어라하라 불렀으며, 백성들은 건길지라 불렀는데, 중국말로는 왕이란 뜻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건길지’는 ‘건’과 ‘길지’로 이루어진 말이다. ‘건’은 몽골어 ‘칸’에 해당하며, ‘길지’는 ‘개차’와 마찬가지로 임금에 해당한다.

‘개차산’이 ‘죽산’이 된 것은 토박이말이 한자말로 바뀌는 과정과 관련이 있을 뿐 한자가 뜻하는 ‘대나무’와는 무관하다. 이처럼 땅이름 변화에는 우리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경우가 많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0654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7089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2211
154 왕의 화병 風文 2023.11.09 944
153 거짓말과 개소리, 혼잣말의 비밀 風文 2022.11.30 943
152 김치 담그셨어요? 風文 2024.02.08 942
151 뒤죽박죽, 말썽꾼, 턱스크 風文 2022.08.23 939
150 내 청춘에게? 風文 2024.02.17 939
149 ‘선진화’의 길 風文 2021.10.15 938
148 조의금 봉투 風文 2023.11.15 938
147 더(the) 한국말 風文 2021.12.01 936
146 사라져 가는 한글 간판 風文 2024.01.06 935
145 소통과 삐딱함 風文 2021.10.30 934
144 말과 상거래 風文 2022.05.20 933
143 ‘다음 소희’에 숨은 문법 風文 2023.02.27 932
142 웃어른/ 윗집/ 위층 風文 2024.03.26 932
141 아줌마들 風文 2022.01.30 930
140 말의 이중성, 하나 마나 한 말 風文 2022.07.25 930
139 북한의 ‘한글날’ 風文 2024.01.06 929
138 새로운 한자어, 이름과 실천 風文 2022.06.18 928
137 사저와 자택 風文 2022.01.30 926
136 금수저 흙수저 風文 2024.02.08 925
135 주어 없는 말 風文 2021.11.10 924
134 혁신의 의미, 말과 폭력 風文 2022.06.20 924
133 국물도 없다, 그림책 읽어 주자 風文 2022.08.22 92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154 155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