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1.22 11:50

소젖

조회 수 6319 추천 수 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소젖


지난 세기 칠십 년대에 위궤양을 앓던 나는 다방에 가면 늘 ‘우유’를 마셨는데, 우유를 달라면 아가씨는 언제나 ‘밀크’를 권했다. 짐짓 우유와 밀크가 어떻게 다르냐고 물으면 우유는 칠백 원이고 밀크는 천 원이라 했다. 값만 다르냐고 하면 우유는 가루를 타서 만들고 밀크는 병에 든 것을 준다고 했다. 우유나 밀크나 그게 그건데 한자말 우유는 칠백 원이고 영어 밀크는 천 원인 사실이 우스웠다. 그럼 우리말 ‘소젖’이면 값을 얼마나 받겠느냐며 말장난을 치곤했다.

신라가 당나라와 손잡고 백제 고구려를 무너뜨려 국학 출신과 당나라 유학생만 벼슬자리에 앉히면서 우리말은 한자말에 짓밟히기 시작했다. 그런 세월이 일천 삼백 년 동안 바로잡히지 않아 저 드넓은 요서·요동·만주 벌판을 죄 중국에 빼앗겼고, 우리말은 한자말에 짓밟혀 하찮고 더러운 것으로 낙인찍혀 굴러 떨어졌다. 그런 흐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아서 ‘어버이’는 ‘부모’에게, ‘언니’는 ‘형’에게, ‘아우’는 ‘동생’에게 짓밟혀 쫓겨나는 모습을 우리 눈으로 본다.

조선이 무너지고 일본과 미국이 덮치면서 일본말과 영어가 다시 우리말을 짓밟았으나 이제 일본말은 한자말 자리로 떨어지고 영어만 홀로 윗자리에 올라섰다. 소젖→우유→밀크, 집→건물→빌딩, 뜰→정원→가든 …. 이처럼 우리말은 한자말과 영어 밑에 이층으로 깔려 숨을 헐떡인다. 이런 우리말의 신세를 뒤집어 맨 윗자리로 끌어올려야 우리가 올바로 살아가는 문화 겨레가 아닐까?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40437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6938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1999
154 왕의 화병 風文 2023.11.09 937
153 김치 담그셨어요? 風文 2024.02.08 937
152 언어의 혁신 風文 2021.10.14 936
151 ‘선진화’의 길 風文 2021.10.15 936
150 내 청춘에게? 風文 2024.02.17 936
149 뒤죽박죽, 말썽꾼, 턱스크 風文 2022.08.23 933
148 ‘다음 소희’에 숨은 문법 風文 2023.02.27 932
147 더(the) 한국말 風文 2021.12.01 930
146 사라져 가는 한글 간판 風文 2024.01.06 930
145 웃어른/ 윗집/ 위층 風文 2024.03.26 930
144 북한의 ‘한글날’ 風文 2024.01.06 929
143 새로운 한자어, 이름과 실천 風文 2022.06.18 928
142 조의금 봉투 風文 2023.11.15 928
141 아줌마들 風文 2022.01.30 924
140 사저와 자택 風文 2022.01.30 921
139 말과 상거래 風文 2022.05.20 921
138 금수저 흙수저 風文 2024.02.08 921
137 소통과 삐딱함 風文 2021.10.30 919
136 뒷담화 보도, 교각살우 風文 2022.06.27 919
135 말의 이중성, 하나 마나 한 말 風文 2022.07.25 919
134 식욕은 당기고, 얼굴은 땅기는 風文 2024.01.04 919
133 국물도 없다, 그림책 읽어 주자 風文 2022.08.22 91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154 155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