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1.16 03:54

여우골과 어린이말

조회 수 6553 추천 수 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여우골과 어린이말

땅이름에는 우리 고유의 정신이 담긴다. 이런 정신은 토박이말 땅이름에 많으며, 작은 땅이름에는 토박이말로 이루어진 것이 많다. 더욱이 이러한 땅이름은 쉽게 바뀌지 않는 성질을 갖는데, 이런 성질을 보수성이라 한다. 땅이름의 보수성은 어휘뿐만 아니라 말소리에도 남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여우골’ 발음이다. 강원 영서 지역에서는 이 땅이름이 ‘이윽골’(이때 ‘이’와 ‘으’는 합쳐서 하나의 소리로 내야 한다. 이런 소리는 ‘영감’을 ‘이응감’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로 발음된다. 그런데 ‘이’와 ‘으’를 합쳐서 소리를 내야 하니, 오늘날의 한글 표기로는 적을 방법이 없는 셈이다. 이렇게 표기 방법이 없는 땅이름이 오랫동안 전해지는 까닭은 땅이름이 지닌 보수성 때문이다.

그런데 〈훈민정음〉에는 이처럼 표기하기 어려운 발음을 표기하는 방법이 들어 있다. 〈훈민정음〉 ‘합자해’에는 아동과 변방의 말에 ‘ㅣ’가 먼저 나고 ‘ㅡ’가 나중 나는 발음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의’는 ‘ㅡ’가 먼저 나고 ‘ㅣ’가 나중 나는 발음이다. 따라서 ‘이으’를 적을 때는 ‘ ’로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훈민정음〉에서는 이런 소리가 국어에서는 사용되지 않으며, 단지 아동(어린이)과 변방의 말에만 간혹 있다고 하였다.

말은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한다. 오늘날 말소리가 가벼워지거나 혀를 굴리는 소리가 많아지는 것은 외국어 교육의 영향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심리를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점에서 ‘여우골’에 남아 있는 〈훈민정음〉의 어린이말은 오랜 우리의 삶을 의미하는 셈이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9326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5840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0767
132 사저와 자택 風文 2022.01.30 882
131 국물도 없다, 그림책 읽어 주자 風文 2022.08.22 881
130 사라져 가는 한글 간판 風文 2024.01.06 881
129 모호하다 / 금쪽이 風文 2023.10.11 880
128 금수저 흙수저 風文 2024.02.08 880
127 새로운 한자어, 이름과 실천 風文 2022.06.18 879
126 피동형을 즐기라 風文 2023.11.11 877
125 말과 상거래 風文 2022.05.20 873
124 어떤 청탁, ‘공정’의 언어학 風文 2022.09.21 872
123 외국어 차용 風文 2022.05.06 871
122 연말용 상투어 風文 2022.01.25 870
121 말과 서열, 세대차와 언어감각 風文 2022.06.21 870
120 뒷담화 보도, 교각살우 風文 2022.06.27 868
119 쓰봉 風文 2023.11.16 868
118 내 청춘에게? 風文 2024.02.17 868
117 언어와 인권 風文 2021.10.28 865
116 상석 風文 2023.12.05 865
115 일고의 가치 風文 2022.01.07 864
114 발음의 변화, 망언과 대응 風文 2022.02.24 864
113 동무 생각, 마실 외교 風文 2022.06.14 864
112 국어와 국립국어원 / 왜 風文 2022.08.29 864
111 혁신의 의미, 말과 폭력 風文 2022.06.20 86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154 155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