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1.13 01:37

가와 끝

조회 수 6589 추천 수 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가와 끝

“무슨 팔자인지 밀려오는 일이 끝도 가도 없네!” 이런 푸념을 듣는다. ‘끝’은 무엇이며 ‘가’는 무엇인가? ‘끝’과 ‘가’는 본디 넘나들 수 없도록 속뜻이 다른 말이었으나 요즘은 걷잡지 못할 만큼 넘나든다. 아니 넘나든다기보다 ‘끝’이 ‘가’를 밀어내고 있다. “그 광주리를 저쪽 마루 가로 갖다 두어.” 하던 것을 요즘은 흔히 “그 광주리를 저쪽 마루 끝으로 갖다 두어.” 한다.

‘가’는 바닥이나 자리나 바탕 같이 넓이가 있는 공간에서 가운데로부터 멀리 떨어진 데를 뜻한다. 그런데 ‘멀리 떨어진 데’가 반드시 얼마간의 너비를 지니고 있는 자리기에 ‘가장자리’라는 말을 함께 쓴다. ‘끝’은 시간을 흐르는 채로 두고 또는 도막으로 잘라서 맨 마지막, 흐르는 시간에 따라 벌어지는 일이나 움직임에서도 맨 마지막, 흐르는 시간처럼 길이가 있는 물건의 맨 마지막을 뜻한다. 나아가 공간도 어느 쪽으로든 마지막을 뜻하지만, 공간의 ‘끝’은 ‘가’와 달리 너비를 지닌 자리가 없어 ‘끄트머리’(끝의 머리)라는 말을 함께 쓴다.

그러니까 ‘가’는 공간에만 쓰고, ‘끝’은 시간에 써야 본바탕이지만 공간까지 넓혀 쓴다. 그만큼 ‘끝’의 뜻넓이가 ‘가’보다 본디 넓어서 조심스레 가려 써 버릇하지 않으니까 힘센 ‘끝’이 힘여린 ‘가’를 밀어낸다. 하지만 “그 광주리를 저쪽 마루 끝으로 밀어 두어.” 하는 말을 제대로 따르면 광주리는 반드시 마루 밑으로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끝’에는 광주리를 받을 만한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39368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185917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00825
132 ‘이고세’와 ‘푸르지오’ 風文 2023.12.30 884
131 사저와 자택 風文 2022.01.30 882
130 국물도 없다, 그림책 읽어 주자 風文 2022.08.22 881
129 새로운 한자어, 이름과 실천 風文 2022.06.18 880
128 모호하다 / 금쪽이 風文 2023.10.11 880
127 금수저 흙수저 風文 2024.02.08 880
126 어떤 청탁, ‘공정’의 언어학 風文 2022.09.21 877
125 피동형을 즐기라 風文 2023.11.11 877
124 뒷담화 보도, 교각살우 風文 2022.06.27 875
123 말과 상거래 風文 2022.05.20 873
122 내 청춘에게? 風文 2024.02.17 872
121 외국어 차용 風文 2022.05.06 871
120 연말용 상투어 風文 2022.01.25 870
119 말과 서열, 세대차와 언어감각 風文 2022.06.21 870
118 혁신의 의미, 말과 폭력 風文 2022.06.20 869
117 동무 생각, 마실 외교 風文 2022.06.14 868
116 쓰봉 風文 2023.11.16 868
115 발음의 변화, 망언과 대응 風文 2022.02.24 867
114 언어와 인권 風文 2021.10.28 865
113 내연녀와 동거인 風文 2023.04.19 865
112 상석 風文 2023.12.05 865
111 일고의 가치 風文 2022.01.07 86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152 153 154 155 156 Next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