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8.01.13 01:37

가와 끝

조회 수 6841 추천 수 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가와 끝

“무슨 팔자인지 밀려오는 일이 끝도 가도 없네!” 이런 푸념을 듣는다. ‘끝’은 무엇이며 ‘가’는 무엇인가? ‘끝’과 ‘가’는 본디 넘나들 수 없도록 속뜻이 다른 말이었으나 요즘은 걷잡지 못할 만큼 넘나든다. 아니 넘나든다기보다 ‘끝’이 ‘가’를 밀어내고 있다. “그 광주리를 저쪽 마루 가로 갖다 두어.” 하던 것을 요즘은 흔히 “그 광주리를 저쪽 마루 끝으로 갖다 두어.” 한다.

‘가’는 바닥이나 자리나 바탕 같이 넓이가 있는 공간에서 가운데로부터 멀리 떨어진 데를 뜻한다. 그런데 ‘멀리 떨어진 데’가 반드시 얼마간의 너비를 지니고 있는 자리기에 ‘가장자리’라는 말을 함께 쓴다. ‘끝’은 시간을 흐르는 채로 두고 또는 도막으로 잘라서 맨 마지막, 흐르는 시간에 따라 벌어지는 일이나 움직임에서도 맨 마지막, 흐르는 시간처럼 길이가 있는 물건의 맨 마지막을 뜻한다. 나아가 공간도 어느 쪽으로든 마지막을 뜻하지만, 공간의 ‘끝’은 ‘가’와 달리 너비를 지닌 자리가 없어 ‘끄트머리’(끝의 머리)라는 말을 함께 쓴다.

그러니까 ‘가’는 공간에만 쓰고, ‘끝’은 시간에 써야 본바탕이지만 공간까지 넓혀 쓴다. 그만큼 ‘끝’의 뜻넓이가 ‘가’보다 본디 넓어서 조심스레 가려 써 버릇하지 않으니까 힘센 ‘끝’이 힘여린 ‘가’를 밀어낸다. 하지만 “그 광주리를 저쪽 마루 끝으로 밀어 두어.” 하는 말을 제대로 따르면 광주리는 반드시 마루 밑으로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끝’에는 광주리를 받을 만한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목록 바람의종 2006.09.16 53559
공지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file 바람의종 2007.02.18 200174
공지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風磬 2006.09.09 215166
290 언어적 자해 風文 2022.02.06 1538
289 프레임 설정 風文 2022.02.06 2063
288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이제 '본전생각' 좀 버립시다 風文 2022.02.06 1240
287 정치인의 애칭 風文 2022.02.08 1363
286 언어적 적폐 風文 2022.02.08 1355
285 권력의 용어 風文 2022.02.10 1144
284 받아쓰기 없기 風文 2022.02.10 2369
283 왜 벌써 절망합니까 - 4. 자네 복싱 좋아하나? 風文 2022.02.10 1134
282 되묻기도 답변? 風文 2022.02.11 1398
281 역사와 욕망 風文 2022.02.11 1255
280 새말과 소통, 국어공부 성찰 風文 2022.02.13 1371
279 왜 벌써 절망합니까 - 8. 경영하지 않는 경영자들 관리자 2022.02.13 1114
278 발음의 변화, 망언과 대응 風文 2022.02.24 1270
277 영어 열등감, 몸에 닿는 단위 風文 2022.04.27 1267
276 남과 북의 협력 風文 2022.04.28 1421
275 외국어 차용 風文 2022.05.06 1245
274 호언장담 風文 2022.05.09 1379
273 인종 구분 風文 2022.05.09 1266
272 마그나 카르타 風文 2022.05.10 1291
271 성인의 세계 風文 2022.05.10 1494
270 한국어의 위상 風文 2022.05.11 1573
269 세계어 배우기 風文 2022.05.11 132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37 138 139 140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149 150 151 ... 157 Next
/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