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개와 느리
땅 위의 목숨이 모두 그렇듯 우리 겨레도 죽살이를 비와 눈에 걸어놓고 있었다. 요즘에는 상점·공장·회사·사무실 같이 집안에서 많이 살지만 지난날에는 농사짓고 고기잡으며 사시사철 집밖 한데서 눈비와 어우러져 살았다. 그만큼 눈비에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었기에 그 이름도 어지간히 많다.
‘는개’는 국어사전에도 올라서 꽤 널리 알려진 말이다. “안개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라고 풀이해 놓았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모자라는 풀이다. ‘는개’는 “늘어진 안개”라는 어구가 줄어진 낱말임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는개’는 비라고 하기가 뭣해서 안개 쪽에다 붙여놓은 이름인 셈인데, ‘는개’처럼 비라고 하기가 뭣해서 비라고 하지 않은 것에 ‘먼지잼’이 또 있다. ‘먼지잼’은 “공중에 떠도는 먼지를 땅으로 데려와서 잠재우는 것”이라는 뜻의 풀이를 그대로 줄여 만든 낱말이다.
‘느리’는 국어사전에 오르지도 못한 낱말이다. 농사짓고 고기잡는 일을 내버려 눈비에서 마음이 떠난 요즘은 들어볼 수도 없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쓰지 않아 잊어버렸나 싶은 낱말이다. 지난 겨울 어느 이른 아침 대전에서 수십 년 만에 ‘느리’를 만나 오래 잊고 살았던 이름을 새삼 떠올렸다. ‘느리’는 “늘어난 서리”라는 어구를 줄여서 만든 낱말이지만 뜻은 그보다 훨씬 겹겹이다. 모두 잠든 사이에 살짝 오다 그친 ‘도둑눈’이면서 마치 ‘서리’처럼 자디잔 ‘싸락눈’이라 햇볕이 나면 곧장 녹아버리는 눈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 목록 | 바람의종 | 2006.09.16 | 40168 |
공지 | 새 한글 맞춤법 표준어 일람표 | 바람의종 | 2007.02.18 | 186730 |
공지 | 간추린 국어사 연대표 | 風磬 | 2006.09.09 | 201742 |
66 | 개구지다 | 바람의종 | 2007.12.20 | 8369 |
65 | 만주말 지킴이 스쥔광 | 바람의종 | 2007.12.20 | 7259 |
64 | 도우미 | 바람의종 | 2007.12.18 | 8041 |
63 | 고구마 | 바람의종 | 2007.12.18 | 8623 |
62 | 가시버시 | 바람의종 | 2007.12.17 | 7281 |
61 | 궁시렁궁시렁 | 바람의종 | 2007.12.17 | 6872 |
60 | 토족말 지킴이 챙고츠 | 바람의종 | 2007.12.16 | 6752 |
59 | 새말의 정착 | 바람의종 | 2007.12.16 | 7274 |
58 | 다슬기 | 바람의종 | 2007.12.15 | 8596 |
57 | 옮김과 뒤침 | 바람의종 | 2007.12.15 | 7970 |
56 | 꿍치다 | 바람의종 | 2007.12.14 | 9171 |
55 | 말과 나라 | 바람의종 | 2007.12.14 | 6619 |
54 | 뒷담화 | 바람의종 | 2007.12.13 | 6932 |
53 | 부추? | 바람의종 | 2007.12.13 | 6071 |
52 | 우리와 저희 | 바람의종 | 2007.12.12 | 8263 |
51 | 다방구 | 바람의종 | 2007.12.12 | 8806 |
50 | 몽골말과 몽골어파 | 바람의종 | 2007.11.10 | 9472 |
49 | 훈훈하다 | 바람의종 | 2007.11.09 | 13020 |
48 | 운율 | 바람의종 | 2007.11.09 | 8008 |
47 | 싸우다와 다투다 | 바람의종 | 2007.11.09 | 6743 |
46 | 과대포장 | 바람의종 | 2007.11.08 | 6711 |
45 | 터키말과 튀르크어파 | 바람의종 | 2007.11.08 | 6325 |